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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깨달음

내 슬픔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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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이 시집을 산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때, 그저 시인이 썼던 시들이 궁금해서 한 권 샀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 문득 다시 읽고 싶어 읽다가 멈춘 페이지가 있었다. 그 시의 제목은 ‘수표교’였다.

 

수표교는 청계천에 있는 다리의 이름이다. 청계천의 물높이를 재는 돌기둥. 세종 대왕님께서 청계천에 돌기둥을 세워 홍수를 예방하고자 만드신 다리다. 수위도 재고 개천을 건너는 다리도 된다. 

 

수표교 말고도 우리는 여러 물의 깊이를 잴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는 딱 한 가지 잴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한다. 눈물. 이 눈물 한 방울의 깊이는 재보려 하지도 않았고, 잴 수도 없었다.

 

살면서 내 슬픔을 제대로 알아준 적이 있었나? 어릴 적 내 부모님은 그래도 나를 강하게 키우려 하셨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닌 태권도를 다녔고 품띠까지는 땄다. 그래도 나는 크게 강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눈물 많고, 겁 많은 아이였다.

 

약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에게 던지신 부모님의 한마디가 있었다. ‘남자애가 왜 이렇게 잘 우니?’,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떻게 살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랬다. 소심했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며 달려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 눈물과 아픔의 깊이를 재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저 버텼고, 그저 참았다. 누르고 누르는 사이, 내 마음속 슬픔이 가득 차 수표교의 존재 자체도 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세상 밖으로 그 슬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터져서 나왔다.

 

그 눈물들이 터져 나왔을 때, 그 홍수를 감당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그 순간에도 그 고통을 누르려했지만,, 누를 수 없었다.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 빠져나왔다. 일단 살아야 했기에 정신없이 빠져나왔다.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득 찬 눈물들을 조금씩 빼고 있다. 다음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지금이 돼서야 알게 됐다. 나의 수표교는 정말로 섬세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섬세한 다리가 다른 사람이 가진 슬픔의 범람을 더 잘 알려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슬픔의 깊이를 알아야 행복의 높이를 알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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